2019년 겨울, 산본역 근처 커피숍에서 만난 그 사람

2019년 12월 셋째 주 목요일이었습니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중심상가 2층에 있는 작은 커피숍에서 저는 한 중소기업 대표를 만났습니다. 직원 47명 규모의 정밀부품 제조업체를 15년째 운영하던 분이셨거든요. 그런데 그분 얼굴을 보는 순간, 저는 사업 이야기보다 다른 게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선생님, 요즘 밤마다 이상해요. 몸은 녹초가 돼서 눕는데, 누우면 눈이 말똥말똥해지거든요. 새벽 3시까지 천장만 봐요. 그러다 겨우 잠들면 5시에 깨고. 이게 한두 달이 아니라 벌써 8개월째입니다.”

그분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고, 말하는 중간중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셨습니다. 커피잔을 드는 손이 미세하게 떨리더군요. 저는 30년간 수백 개 기업을 컨설팅하면서 정말 다양한 대표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몸이 무너지기 전에 잠이 먼저 무너지는 경우를 특히 많이 봤습니다. 그날 그분도 정확히 그 상태였습니다.

피곤한데 잠이 안 오는 건 게으름이 아닙니다

대부분이 오해하는 것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피곤하면 당연히 잠이 와야지, 피곤한데 잠이 안 온다고? 그건 낮에 덜 피곤한 거야.”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40대 중반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컨설팅 현장에서 밤새 보고서를 쓰고, 새벽에 공장 돌아다니고, 그래도 머리만 대면 골아떨어졌거든요. 그래서 잠 못 자는 분들한테 속으로 ‘의지 문제 아닌가’ 싶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7년 무렵, 제가 직접 그 상태가 됐습니다. 당시 부산에서 조선 관련 협력업체 세 곳을 동시에 맡아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석 달쯤 지나니까 몸은 천근만근인데 눕기만 하면 머리가 오히려 맑아지는 기현상이 시작됐습니다. 하루에 서너 시간 겨우 자면서 버텼고, 결국 운전 중에 순간적으로 의식이 끊기는 일까지 겪었습니다.

뇌의 과각성 상태라는 함정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이건 의지나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긴장 상태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거라는 걸요. 전문용어로 ‘과각성 상태’라고 하더군요. 낮 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뇌의 교감신경이 활성화됩니다. 심장이 빨리 뛰고, 근육이 긴장하고, 정신이 예민해지죠. 문제는 이게 밤이 돼도 꺼지지 않는 겁니다. 몸은 분명히 지쳤는데, 뇌는 여전히 “지금 위험 상황이야, 경계해야 해”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죠.

그 산본의 대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분은 낮에는 거래처 클레임 처리하고, 저녁에는 자금 흐름 점검하고, 밤에는 내일 있을 은행 미팅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돌리고 계셨습니다. 눕는 순간에도 뇌가 일을 멈추지 않았던 거예요. 그러니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잠이 올 리가 없었습니다.

그날 제가 실제로 권했던 세 가지

첫 번째: 한의원 상담부터 받으세요

저는 그분께 먼저 산본 인근의 한의원을 찾아가 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양방 수면클리닉이 아니라 한의원이었냐고요? 그분 상태가 단순히 “잠만 안 오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소화도 안 되고, 어깨가 늘 뻣뻣하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셨거든요. 이런 복합적인 증상은 몸 전체의 균형을 보는 관점이 필요했습니다.

실제로 그분은 제 권유대로 산본역 근처 한의원을 찾아가셨고, 심장과 비장의 기운이 허해져서 마음이 불안정해진 상태라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한약 처방과 함께 침 치료를 병행하셨는데, 2주쯤 지나니까 새벽에 깨는 횟수가 줄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한 달 반 뒤에는 평균 수면 시간이 4시간에서 6시간으로 늘었고요.

두 번째: 밤 9시 이후 업무 연락 끊기

그분 스마트폰을 잠깐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카카오톡 알림이 밤 11시, 12시에도 계속 와 있더군요. 공장장, 영업팀장, 거래처 담당자까지. 저는 단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대표님, 밤 9시 이후엔 회사 메신저 알림을 꺼두세요. 급한 건 전화로 오게 하시고요. 그리고 전화도 진짜 급한 거 아니면 안 받으셔도 됩니다. 내일 아침에 확인해도 회사 안 망합니다.”

처음엔 굉장히 불안해하셨습니다. “직원들이 저한테 바로 연락 안 되면 어떡해요?” 그래서 제가 물었죠. “그럼 대표님이 쓰러지면 직원들 누가 책임지나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세 번째: 잠들기 전 4-7-8 호흡

한의원 원장님이 알려주셨다는 호흡법이 있었습니다. 코로 4초간 숨을 들이쉬고, 7초간 멈추고, 입으로 8초간 내쉬는 방법이었어요. 이게 교감신경을 진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분은 처음엔 “이런 거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요”라며 반신반의하셨는데, 2주 정도 매일 밤 5분씩 하시니까 누워서 뒤척이는 시간이 확 줄었다고 하셨습니다.

석 달 뒤, 그분과 다시 만났을 때 평균 수면 시간 6시간 반, 중간에 깨는 횟수 주 2-3회로 감소라는 결과를 직접 들었습니다. 물론 완치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내일 출근할 수 있을 만큼의 잠”은 자게 되셨더군요.

30년간 제가 본 불면증의 진짜 뿌리

업종별로 다른 패턴

재밌는 게, 업종에 따라 불면증 패턴이 다르더라고요. 제조업 대표들은 주로 “지나간 일에 대한 반추” 때문에 잠을 못 잤습니다. 오늘 불량률이 왜 높았지, 그 거래처 담당자한테 왜 그렇게 말했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더라는 거예요. 반면 IT나 유통업 대표들은 “다가올 일에 대한 불안”이 더 컸습니다. 내일 프레젠테이션 어떡하지, 다음 달 자금 어떻게 돌리지.

대표 유형별 차이

성격에 따라서도 달랐습니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대표들은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뇌가 쉬질 못했고요. 책임감이 과도하게 강한 분들은 직원들 걱정, 가족 걱정까지 밤새 하시다가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결국 불면증은 단독으로 오는 병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일하는 방식, 책임지는 방식, 걱정하는 방식이 총체적으로 녹아든 결과물이었어요. 그래서 수면제 하나로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몸과 마음, 생활 패턴을 함께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오늘 밤, 또 천장을 보고 계신 분께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도 분명 계실 겁니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운데, 이불 속에 들어가면 갑자기 눈이 또렷해지는 분. 오늘 있었던 일이, 내일 해야 할 일이, 한 달 뒤 터질지도 모르는 일이 머릿속에서 회전목마처럼 도는 분.

제발 혼자 버티지 마십시오. 의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건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제가 만난 수백 명의 대표들 중 최소 3분의 1은 비슷한 경험을 하셨습니다. 다만 대부분이 말을 안 할 뿐이에요.

산본에도, 당신이 계신 동네에도 분명 제대로 상담해주실 한의원이 있습니다. 먼저 문을 두드려 보십시오. 잠을 되찾는 건 사치가 아니라 생존입니다. 당신이 쓰러지면, 당신이 지키려는 모든 것도 함께 무너집니다. 오늘 밤도 천장만 바라보실 건가요, 아니면 내일 아침 전화 한 통 해보실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