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한 스타트업 대표가 저한테 찾아왔어요. 초대형 벤처캐피탈 3곳으로부터 피칭 기회를 얻었다며 자랑스럽게 얘기했죠. 그런데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투자 유치 목표금액이 몇 억인데요?” 대답이 이상했어요. “아, 그건 아직 안 정했어요. 일단 피칭 가서 투자자 반응 보고 결정하려고요.” 30년간 대기업 전략기획과 마케팅을 해온 입장에서 순간 놀랐습니다. 그 대표는 멋진 사업계획서를 들고 있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단 하나를 빠뜨리고 있었거든요.
1. 스타트업 피칭 전에 반드시 준비해야 할 단 하나는 뭘까요?
여러분, 혹시 스타트약 투자 유치를 준비하면서 사업계획서에 온 에너지를 쏟고 있진 않나요? 피칭 자료를 예쁘게 만들고, 시뮬레이션을 열심히 준비하고… 그것도 물론 중요하죠. 근데 이게 아니더라구요.
쉽게 말하면, 피칭 전에 반드시 준비해야 할 단 하나는 바로 ‘투자 유치 목표 금액’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그 금액이 필요한 이유’까지 명확히 하는 거죠.
왜 이게 가장 중요할까요? 제 30년 경력에서 본 투자자들의 패턴을 말씀드릴게요. 투자자는 당신의 사업 아이디어가 좋은지,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는 게 아닙니다. 투자자가 보는 건 단 하나입니다. 바로 ‘당신이 얼마를 투자받으면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있는가’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2021년 제가 컨설팅했던 B2B SaaS 스타트업 대표는 처음엔 “시리즈 A에서 50억 원을 받겠다”고 했어요. 피칭 때 투자자가 물었죠. “50억을 받으면 뭘 할 건데요?” 그 대표는 뜬금없었습니다. 마치 시험 문제가 예상과 다른 학생처럼요. 그래서 저는 함께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 “50억 중 개발 인력 채용에 2억 5천만 원, 마케팅과 영업에 2억 원, 인프라와 운영비에 1억 5천만 원… 이렇게 하면 12개월 동안 MAU를 현재 5,000명에서 50,000명으로 늘릴 수 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니까 투자자들의 반응이 확 달라졌어요. 그 스타트업은 결국 45억 원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같은 아이디어, 같은 팀, 같은 사업계획서인데도 말이죠.
2. 투자 유치 목표 금액을 정할 때 필수 체크사항
- 최소 12개월의 구체적인 지출 계획 — 급여, 마케팅비, 인프라, 법무·회계, 재고(필요시) 등을 모두 계산했나요? 저희 창업 과정에서는 최소 15개월치를 준비했어요. 왜냐하면 투자금을 받은 후에도 실제 실행까지 2~3개월이 걸리거든요.
- 마일스톤을 반영한 단계적 목표 — 시리즈 A에서 100억을 받겠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씨드부터 시작해서 프리 A, A, B 이렇게 단계를 나눠야 합니다. 현재 당신이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이 얼마인지 투자자도 알아요. 2024년 기준으로 씨드 펀딩은 평균 3억~10억 원대, 시리즈 A는 15억~50억 원대입니다.
- Runway(자금 소진 기간) 계산 — 투자를 받은 돈으로 몇 개월을 버틸 수 있는가를 뜻해요. 최소 18개월 이상의 Runway를 확보하는 게 업계 표준입니다. 쉽게 말하면 월 평균 지출이 5천만 원이면, 9억 원을 받아야 18개월을 견딜 수 있다는 뜻이죠.
- 희석률(Dilution) 고려 — 지금 당신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면, 투자를 받을 때마다 지분이 줄어듭니다. 일반적으로 시리즈 A에서는 15~25% 정도가 희석돼요. 따라서 마지막 펀딩까지 고려해서 자신이 보유할 지분을 역산해야 합니다.
💬 투자 유치 목표는 ‘얼마가 필요할까’가 아니라 ‘이 돈으로 뭘 이루고 다음 펀딩까지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입니다.
3. 투자 목표 금액을 명확히 하는 단계별 준비
- 1단계: 최소 12개월의 상세 지출 내역서 작성하기 — 엑셀로 개월별 항목을 정리하세요. (1) 팀 구성과 급여 (2024년 개발자 연봉: 평균 6천만~8천만 원, 디자이너: 5천만~6천만 원), (2) 마케팅비 (월 2천만~5천만 원), (3) 서버/인프라 (월 1천만~3천만 원), (4) 사무실 (월 1천~3천만 원), (5) 법무·회계·보험 (월 500만~1천만 원). 우리 회사의 경우 초기 월 지출이 약 1억 2천만 원으로 계산됐어요.
- 2단계: 다음 펀딩까지의 성장 로드맵 세우기 — “이 자금으로 6개월 뒤에 매출 1억을 만들고, 12개월 뒤에 사용자 수 10만 명을 확보한다” 같은 구체적 숫자를 정하세요. 투자자는 당신이 이 목표를 달성했을 때 다음 라운드 펀딩이 가능한지를 판단합니다.
- 3단계: 벤치마킹 기업 조사하기 — 당신과 비슷한 크기의 스타트업들이 각 라운드에서 얼마를 모금했는지 확인하세요. 크런치베이스(Crunchbase), 피치북(PitchBook) 같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면 좋습니다. “우리 회사와 유사한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씨드 라운드에서 평균 7억 2천만 원을 모금했다”는 식의 근거를 만들어야 해요.
- 4단계: 희석률을 감안한 역산 계획 세우기 — 예를 들어 최종 목표가 시리즈 B까지 성공하는 거라면, B에서 지분 20%를 남기기 위해 지금 몇 % 희석을 감수할 수 있는지 계산하세요. 일반적으로 씨드는 10~15% 희석, A는 20~25% 희석을 염두에 두면 됩니다.
- 5단계: 투자자와의 대화에서 사용할 ‘피칭 스크립트’ 만들기 — “우리는 총 30억 원이 필요합니다. 첫 단계로 지금 9억 원을 모집하려고 하고, 이를 통해 12개월 내에 월 매출 3억 원 수준의 회사로 성장시킬 예정입니다. 그 이후 시리즈 A에서 추가 25억 원을 받아 시장 확장을 할 겁니다.” 이정도면 투자자가 당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이해합니다.
✔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월별 지출액으로 환산하고, 최소 18개월 Runway 확보하기
✔ 투자금으로 달성할 구체적 성과(KPI)를 숫자로 제시하기 — 매출, 사용자 수, 파트너사 수 등
✔ 벤치마킹 기업들의 펀딩 규모와 비교해서 시장 통념에 맞는 금액 설정하기
4. 그럼 실제로 투자 목표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잘못된 표현: “저희는 시리즈 A에서 50억을 받으려고 합니다.”
올바른 표현: “저희는 현재 씨드 라운드에서 9억 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1) 백엔드 개발자 2명, 프론트엔드 개발자 1명 채용, (2) 구글·네이버 광고에 월 3천만 원 투자, (3) AWS 인프라 확충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12개월 뒤 MAU 10만 명, 월 3억 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 시점에서 시리즈 A 펀딩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이 두 표현의 차이가 뭘까요? 첫 번째는 투자자에게 “이 사람은 자기 사업을 모른다”는 인상을 줍니다. 두 번째는 “이 사람은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신뢰를 줍니다.
5. 자주 묻는 질문 (FAQ)
Q. 투자자들이 제시한 금액이 제 목표 금액과 다르면 어떻게 하나요?
A. 흔한 일입니다. 투자자가 당신의 목표보다 적게 제시했다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1) 지출 계획을 줄이기 — 월 지출을 1억 2천만 원에서 8천만 원으로 조정해서 더 오래 버티기, (2) 다른 투자자 찾기 — 당신의 계획에 맞는 규모의 투자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기. 저는 두 번째를 권장합니다. 자금이 부족하면 팀원들에게 미안해져야 하거든요.
Q. 씨드 라운드에서 목표 금액을 얼마로 잡는 게 정상인가요?
A. 2024년 기준 한국 스타트업의 씨드 평균은 약 5억~10억 원입니다. B2B SaaS는 조금 높은 경향이 있고(8억~15억), 소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