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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M 도입하고도 영업이 안 되는 회사들의 공통적인 실수

2022년 겨울, 서울 마포구의 한 중소 IT 솔루션 회사 사무실이었습니다. 영업팀장이 제 앞에서 노트북 화면을 열었는데, 거기에 딱 하나의 숫자가 떠 있었어요. CRM 도입 비용: 월 340만 원. 그걸 18개월째 내고 있었죠. 근데 정작 영업 미팅 현황을 물어봤더니, 팀장이 수첩을 꺼내는 겁니다. 손으로 쓴 수첩을요.

저는 말을 잃었습니다. “CRM은요?” 하고 물었더니 그분이 멋쩍게 웃으면서 이러더라고요. “아, 그거요… 사장님이 쓰라고 해서 로그인은 하는데, 솔직히 거기에 뭘 넣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18개월. 6,120만 원. 그리고 여전히 수첩.

이게 딱 한 회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지난 30년간 수백 개의 기업 현장을 돌아다녔는데, CRM을 도입한 회사 중에서 제대로 쓰고 있는 곳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비싼 수첩을 사놓고 캐비닛에 처박아둔 꼴이에요.


1막 — 도구를 샀는데, 왜 영업은 그대로인가

제가 처음 CRM이라는 개념이 국내 중소기업에 막 퍼지기 시작할 무렵, 저도 한 회사에 “이거 도입하면 영업 효율 확 올라갑니다”라고 권했습니다. 당시 경기도 안산의 제조 중소기업이었는데, 대표님이 흔쾌히 수천만 원을 투자했어요. 저도 꽤 자신 있었거든요.

6개월 뒤에 다시 방문했을 때, 저는 제 판단이 얼마나 얄팍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CRM에는 데이터가 거의 없었어요. 영업팀 직원들은 CRM에 로그인은 하는데, 고객 이름이랑 전화번호 정도만 넣고 끝. 정작 어떤 고객이 언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다음 미팅을 언제 잡아야 하는지, 그런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대표님이 저한테 이러셨어요. “컨설턴트님, 솔직히 말해서 그거 있으나 없으나 똑같아요.” 그 말이 진짜 아팠습니다. 왜냐면 맞는 말이었거든요.


2막 —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세 가지 실수

실수 ① CRM을 ‘입력 도구’로 쓴다

제가 만나본 회사들의 가장 흔한 착각이 이겁니다. CRM은 고객 정보 저장 창고가 아니에요. 그런데 대부분의 영업팀이 CRM을 마치 엑셀 파일 대용품처럼 씁니다. 이름, 회사, 전화번호. 끝.

한번은 인천의 한 무역회사에 갔는데, 영업사원이 3명이었습니다. 각자 담당 고객이 80~100개씩 됐어요. CRM에 뭐가 들어 있냐고 봤더니, 회사명이랑 담당자 이름뿐. 근데 가장 충격적인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제가 “이 고객 마지막 미팅이 언제였어요?” 하고 물었더니, 그 영업사원이 자기 카카오톡 채팅방을 뒤지는 거예요. CRM이 있는데 카카오톡을 뒤지고 있었다는 거죠.

CRM은 ‘고객과의 모든 접점 기록’이 들어가야 살아 숨 쉽니다. 언제 전화했고, 무슨 얘기가 오갔고, 다음엔 언제 어떤 이유로 다시 연락해야 하는지. 그 흐름이 쌓여야 비로소 도구로서의 가치가 생깁니다.

실수 ② 도입 전에 ‘우리의 영업 프로세스’를 정의하지 않는다

이게 진짜 핵심 문제예요. CRM은 도구입니다. 도구는 쓸 사람이 어떻게 쓸지 알아야 효과가 나요. 그런데 많은 회사들이 CRM을 먼저 사고, 나중에 어떻게 쓸지 생각합니다. 이건 순서가 완전히 거꾸로거든요.

제가 실제로 겪은 사례입니다. 2019년에 경남의 한 B2B 서비스 회사가 연 매출 기준으로 꽤 큰 CRM 솔루션을 들여왔어요. 근데 이 회사 영업 프로세스가 뭐냐고 물었더니 대표님도 명확하게 말을 못 했습니다. “음… 영업사원들이 알아서 하죠.” 이런 회사가 CRM을 도입하면 어떻게 될까요. CRM 안에 영업사원 수만큼의 서로 다른 프로세스가 생깁니다. 아무도 같은 방식으로 쓰지 않아요. 결국 누가 어느 단계에 어떤 고객을 갖고 있는지 경영진이 파악을 못 하게 됩니다.

CRM을 도입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 있습니다. 바로 영업 파이프라인의 단계를 명문화하는 것입니다. ‘잠재고객 발굴 → 첫 접촉 → 니즈 파악 → 제안 → 협상 → 계약 → 사후 관리’. 이런 식으로 우리 회사만의 영업 단계를 먼저 정해야 해요. 그래야 CRM 안에 그 단계가 담기고, 데이터가 쌓이고, 의미 있는 숫자가 나옵니다.

실수 ③ 영업팀이 ‘감시당한다’고 느끼게 만든다

이건 제가 30년 중에서 가장 많이 목격한 실수입니다. 대표님들이 CRM을 도입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이제 여러분 활동 내역 다 보입니다. 열심히 하세요.” 진짜 이렇게 말하는 분들 많거든요. 대놓고 이렇게 말하면 영업팀이 CRM에 뭘 넣겠어요? 불리한 건 안 넣고, 유리한 것만 넣죠.

부산의 한 유통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CRM을 도입하고 나서 영업팀 실적이 오히려 뚝 떨어졌어요. 처음엔 뭔 이유인지 몰랐는데, 현장을 파고들어가 보니 영업사원들이 CRM 입력하는 데 하루 1~2시간씩 쏟고 있었습니다. 왜냐? 대표님이 “기록이 없으면 활동 안 한 거로 간주하겠다”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영업사원들이 실제 고객 만나는 시간보다 CRM에 허위 혹은 과잉 기록 넣는 시간이 더 많아진 거예요. 본말전도가 따로 없었죠.

CRM은 감시 도구가 아닙니다. 영업사원이 더 잘 팔 수 있도록 돕는 도구여야 해요. 그 인식을 심어주는 게 대표님의 역할입니다.


3막 —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딱 세 가지만 말합니다

저는 강연장에서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CRM이 영업을 해주는 게 아닙니다. CRM은 당신의 영업팀이 더 똑똑하게 영업하도록 돕는 조력자입니다.” 이 전제가 틀리면 아무리 비싼 솔루션도 고철 덩어리예요.

  • 첫째, 도입 전에 영업 프로세스부터 정의하세요.
    CRM을 사기 전에 화이트보드 앞에 영업팀 전체를 모아 놓고 “우리 회사 영업은 어떤 단계로 이루어지냐”를 먼저 그려보세요. 이게 없으면 CRM은 빈 깡통입니다. 적어도 4~6단계의 영업 파이프라인을 명문화하고, 각 단계에서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지 합의해야 합니다.
  • 둘째, CRM 입력의 ‘최소 기준’만 만드세요.
    모든 걸 다 입력하라고 하면 아무도 안 씁니다. 딱 세 가지만 정하세요. 예를 들어, ‘① 마지막 접촉 날짜 ② 고객이 말한 핵심 고민 ③ 다음 액션’. 이 세 가지만 매번 쌓여도 6개월 뒤에 놀라운 데이터가 생깁니다. 적게 시작해서 습관을 들이는 게 핵심이에요.
  • 셋째, 대표님이 CRM 데이터로 칭찬하는 문화를 만드세요.
    월요일 아침 회의에서 “지난주에 CRM에 가장 상세하게 기록한 사람 누구야? 잘했다”라는 말 한마디가 조직 문화를 바꿉니다. 반대로 “왜 입력 안 했어?”라고 혼내는 것만으로는 절대 문화가 안 바뀌어요. 사람은 칭찬받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제가 안산 그 제조회사 대표님께 6개월 뒤에 다시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분이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냐고요? “이제 영업팀 미팅을 CRM 화면 띄워놓고 합니다. 고객 얘기가 진짜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 한 마디를 듣는 순간, 저는 이 일을 왜 계속하는지 다시 알았습니다.

CRM은 비쌀 필요도 없습니다. 기능이 많을 필요도 없어요. 당신 회사 영업팀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다음 행동을 결정하게 만드는 것. 그게 CRM의 전부입니다.

지금 당신 회사 CRM에 마지막으로 뭔가 입력된 날짜가 언제입니까? 그 날짜가 이 칼럼의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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