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강원도 평창의 어느 리조트 대연회장에서

오후 3시쯤이었습니다. 서울 마포구에 본사를 둔 직원 87명 규모의 마케팅 대행사 대표가 저를 급하게 불렀거든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김 대표님, 지금 워크숍 2일 차인데요. 직원들이 다 죽은 표정이에요. 제가 뭘 잘못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KTX를 타고 평창으로 향했습니다. 리조트 대연회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 풍경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한쪽에서는 팀별 미션 게임이 한창이었는데, 참여하는 직원들 얼굴에는 웃음이 없더군요. 억지로 박수 치고, 억지로 구호 외치고, 시계만 슬쩍슬쩍 보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거 진행하시는 분이 ‘자, 모두 하나 되는 시간입니다!’ 하는데, 저는 속으로 ‘월요일 보고서 마감인데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싶었어요.” — 당시 워크숍 참석자 A 과장

대표는 회사 창립 10주년을 기념해서 1박 2일 워크숍에 무려 4천만 원을 투자했더라고요. 좋은 리조트, 유명한 팀빌딩 전문업체, 연예인 MC까지 섭외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워크숍이 끝난 뒤 2주 만에 핵심 인력 3명이 퇴사 의사를 밝혔고, 사내 익명 게시판에는 “이런 데 돈 쓸 거면 성과급이나 주지”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왜 4천만 원짜리 워크숍이 회사를 더 망가뜨렸을까

대부분의 경영자분들이 팀 빌딩 워크숍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계신 게 있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돈 들여 사면 팀워크가 좋아진다”는 생각 말입니다. 마치 비싼 운동기구를 사면 살이 빠질 거라고 믿는 것과 똑같은 착각이거든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컨설팅 초창기인 1990년대 후반에 똑같은 실수를 했습니다. 경기도 안양의 한 제조업체에서 팀워크 문제로 의뢰가 들어왔을 때, 저는 당시 유행하던 야외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추천했거든요. 결과가 어땠냐고요? 체력 약한 여직원들은 소외감을 느꼈고, 현장직 직원들은 “사무직들이 우리 힘든 거 모른다”며 오히려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팀 빌딩의 본질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팀 빌딩 워크숍이 실패하는 세 가지 구조적 문제

첫째, 진단 없는 처방입니다. 병원에서 검사도 안 하고 약을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팀 빌딩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마다 문제가 다릅니다. 어떤 회사는 부서 간 소통 단절이 문제고, 어떤 회사는 세대 갈등이 문제고, 어떤 회사는 대표와 직원 간 신뢰 붕괴가 핵심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워크숍 업체들은 똑같은 패키지를 팝니다. “우리 프로그램 좋아요, 만족도 95%예요”라고 하는데, 그 만족도라는 게 뭔지 아십니까? 행사 직후에 받는 설문이거든요. 맛있는 밥 먹고 기분 좋을 때 “어땠어요?” 물으면 다들 “좋았어요” 하는 겁니다.

둘째, 강제성이 만드는 역효과입니다. “이번 워크숍 필참입니다”라는 공지가 나가는 순간, 직원들 머릿속에서는 이미 ‘업무’가 됩니다. 업무 시간 중 강제 참여는 자발성을 죽입니다. 제가 만난 한 중견기업 인사팀장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워크숍 가면 제일 싫은 게 뭔지 아세요? 퇴근 시간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사무실에선 6시에 퇴근하는데, 워크숍 가면 밤 10시까지 술자리예요.”

셋째, 사후 연결 고리의 부재입니다. 워크숍에서 아무리 좋은 경험을 해도, 월요일 출근하면 다 잊어버립니다. 왜냐고요? 일상 업무 구조가 똑같기 때문입니다. 팀워크가 안 되는 회사는 구조적으로 팀워크를 막는 시스템이 있는 겁니다. 그걸 안 바꾸고 1박 2일 놀러 갔다 온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평창 리조트에서 제가 실제로 한 것들

그날 평창에 도착해서 저는 먼저 워크숍 진행을 전면 중단시켰습니다. 대표가 당황했지만, 저는 단호하게 말씀드렸거든요. “지금 이대로 가면 돈만 날리는 게 아니라 회사가 더 망가집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한 일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1단계: 익명 청취 세션 — 진짜 목소리를 듣는 시간

87명 직원을 7개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각 그룹당 12~13명. 그리고 저 혼자 각 그룹과 40분씩 대화했습니다. 대표와 임원진은 완전히 배제시켰고요. 규칙은 하나였습니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는 누가 말했는지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처음 10분은 다들 입을 다물고 있더군요. 그런데 한 명이 입을 열자 봇물 터지듯 쏟아졌습니다.

“대표님이 본부장들한테 야단치면, 그게 다 저희한테 내려와요. 근데 워크숍 와서 ‘우리는 한 가족’ 이러니까 웃기잖아요.”

“작년에 MVP 받은 사람이 올해 퇴사했거든요. 그분이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상 받아봐야 월급 오르는 것도 아니고, 일만 더 시키더라’라고요.”

2단계: 대표에게 현실 직면시키기

저녁 8시, 대표와 단둘이 마주 앉았습니다. 제가 정리한 A4용지 세 장을 건넸거든요. 직원들이 한 말을 주제별로 정리한 겁니다. 대표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군요. 다 읽고 나서 한참을 말이 없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보였던 거예요?”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대표님, 직원들은 이 회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직은요. 그런데 대표님은 사랑받고 싶으셨던 거예요. 4천만 원은 사랑을 사는 돈이 아닙니다.”

3단계: 워크숍 남은 일정 전면 재구성

남은 하루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팀별 경쟁 게임’은 전부 취소했고, 대신 세 가지를 했거든요.

  • 대표의 공개 사과와 약속 선언: 대표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이 불편했다면 제 탓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본 없이, 진심으로요.
  • 부서별 ‘불만 테이블’: 각 부서가 경영진에게 직접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단, 요구사항은 3개 이내, 반드시 실행 가능한 것으로 제한했고요.
  • 자유 해산: 저녁 6시 이후는 완전 자유 시간으로 돌렸습니다. 술자리 강제 참석 없음. 방에서 넷플릭스 봐도 됨. 이거 하나로 직원들 표정이 확 달라지더군요.

그 후 3개월: 측정 가능한 변화들

워크숍 이후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이 회사를 방문했습니다. 부서별 불만 테이블에서 나온 요구사항 실행 여부를 점검했거든요. 3개월 뒤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퇴사율이 전년 동기 대비 47% 감소했고, 사내 만족도 조사 점수는 5점 만점에 2.8점에서 3.9점으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당초 퇴사 의사를 밝혔던 3명 중 2명이 남았습니다. 남은 1명은 결혼 이민으로 퇴사한 거라 어쩔 수 없었고요.

30년간 본 패턴: 팀 빌딩이 실패하는 진짜 근본 원인

수백 개 회사를 거치면서 저는 팀 빌딩 워크숍의 실패 패턴을 유형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업종별로, 대표 성향별로 뚜렷한 차이가 있더군요.

업종별 차이

IT·스타트업 계열: 이쪽은 ‘수평적 문화’를 강조하면서 정작 성과 압박은 극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워크숍 가서 “우리는 가족이야”라고 하는데, 월요일 출근하면 “이번 스프린트 못 맞추면 책임져”라는 메시지가 슬랙에 뜨거든요. 직원들이 느끼는 괴리감이 엄청납니다.

제조업·전통 산업: 현장직과 사무직 간 벽이 문제입니다. 워크숍을 같이 해도 식사 테이블이 나뉘고, 숙소 배정도 따로 됩니다. 형식적으로는 함께하는데 실질적으로는 분리된 채로 끝나는 겁니다.

유통·서비스업: 교대 근무 때문에 전 직원이 모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참석 못 한 인원은 소외감 느끼고, 참석한 인원은 “나만 고생했다”고 느끼고요.

대표 유형별 차이

‘쇼맨형’ 대표: 워크숍을 자기 무대로 생각합니다. 본인이 마이크 잡고 연설하고, 장기자랑 때 제일 먼저 나가고, 술자리에서 “내가 이 회사 세울 때 말이야”로 시작하는 무용담을 늘어놓습니다. 직원들은 웃지만 속으로는 지쳐있거든요.

‘결핍형’ 대표: 직원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강합니다. 평창 리조트 그 대표가 이 유형이었거든요. 돈을 들여서라도 “우리 대표님 좋은 분이야”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직원들은 그걸 압니다. “대표님이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 거구나”를요.

‘방관형’ 대표: 워크숍 기획부터 실행까지 전부 인사팀에 떠넘기고 본인은 참관만 합니다. “난 직원들 자율에 맡긴다”고 하는데, 직원들은 이걸 무관심으로 받아들입니다. “대표는 우리한테 관심 없구나”라고요.

지금 팀 빌딩 워크숍을 준비하고 계신 대표님께

30년간 이 일을 해오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습니다. 팀워크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허락되는 겁니다. 대표가 직원들에게 “너희끼리 잘 지내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대표 자신이 먼저 직원들에게 신뢰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직원들이 “이 대표 밑에서 일하니까 동료들과도 잘 지내보자”라는 마음이 생기거든요.

워크숍 예산 4천만 원이 있다고요? 그 돈의 절반을 직원들 복지에 쓰시고, 나머지 절반으로 반나절짜리 소규모 대화 시간을 분기별로 네 번 만드세요. 1박 2일 대형 이벤트보다 3시간짜리 진솔한 대화 네 번이 팀워크에 열 배는 더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워크숍 끝나고 “다들 즐거웠어요?”라고 묻지 마세요. 한 달 뒤에 “그날 이후로 뭐가 달라졌습니까?”라고 물으세요. 직원들이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건 워크숍이 아니라 그냥 단체 여행이었던 겁니다.

지금 당장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지난 워크숍 이후로 당신 회사에서 실제로 바뀐 것이 단 한 가지라도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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