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2일, 경기도의회 예담채에서 벌어진 일
그날 아침 저는 수원에 있었습니다. 경기도 화성 소재 직원 87명 규모의 2차 전지 부품 제조업체 대표님과 미팅이 잡혀 있었거든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뉴스를 보는데, 경기도의회에서 41조 6,799억 원 규모의 추경이 통과됐다는 속보가 떴습니다.
“선생님, 이거 보셨어요? 전국에서 가장 큰 추경이래요. 근데 왜 ‘지각 통과’라고 하는 거죠?”
대표님이 휴대폰을 내밀며 물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41조 원이면 웬만한 국가 예산 수준인데, 그게 ‘지각’이라니요. 기사를 훑어보니 답이 나왔습니다. 당초 예정보다 한 달 가까이 늦어졌다는 거였어요. 여야 간 줄다리기, 예산 배분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김동연 지사의 ‘소통 부재’가 원인으로 지목됐더군요.
저는 그 자리에서 대표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이거, 저희 컨설팅 현장에서 매일 보는 장면이에요.” 대표님 표정이 묘하게 변하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도 작년에 같은 실수 했거든요. 좋은 계획 다 세워놓고, 정작 현장 팀장들한테는 설명 한 번 제대로 안 하고 밀어붙였다가 3개월 날렸습니다.”
그렇습니다. 41조 원짜리 추경이 지각한 이유와, 중소기업 사장님이 현장에서 겪는 실패의 원인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규모가 아니라 ‘속도’가 문제다 — 대부분이 오해하는 지점
언론에서는 이번 추경을 두고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최대 규모”라고 대서특필했습니다. 본예산 40조 577억 원보다 1조 6,222억 원이 늘어난 수치죠. 고유가·물가 안정,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민생 안정에 방점을 찍은 예산이라고 합니다. 다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산의 크기가 아무리 커도, 제때 집행되지 않으면 그건 종이 위의 숫자에 불과합니다. 6월 중순에 통과된 추경이 실제로 현장에 닿으려면 최소 2~3개월이 걸립니다. 하반기 예산 집행 시작 시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효과는 9월 이후에나 나타날 겁니다.
저도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2008년쯤이었을 겁니다. 경남 창원의 한 금형 제조업체에서 긴급 회생 컨설팅을 맡았습니다. 당시 저는 완벽한 구조조정 계획을 세웠어요. 인력 재배치, 생산라인 효율화, 신규 거래처 발굴까지. 6개월짜리 마스터플랜이었죠. 문제는 그걸 사장님께만 설명하고, 현장 조반장들에게는 “곧 바뀔 거다”라고만 했던 겁니다.
결과가 어땠을 것 같으세요? 3개월 만에 핵심 기술자 4명이 퇴사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설명 안 해주더라”라고 했습니다. 계획의 완성도는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소통 없는 전략은 실행되지 않습니다. 그때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이번 경기도 추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동연 지사가 내놓은 정책 방향 자체가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에너지 바우처 확대, 소상공인 지원, 공공일자리 창출. 어느 하나 빠지면 안 되는 것들이죠. 문제는 그 좋은 계획을 의회와 충분히 공유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부족했다는 거예요. 여야 대표들이 “사전 협의가 미흡했다”고 지적한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한 해결책 — 제가 직접 했던 방법
창원 금형업체 실패 이후, 저는 컨설팅 방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이름을 붙이자면 ’48시간 선행 소통 원칙’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떤 중요한 결정이든, 실행 48시간 전에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직접 설명하는 겁니다.
1단계: 이해관계자 지도 그리기
2019년, 인천 남동공단 소재 직원 45명의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이 방식을 처음 체계화했습니다. 사장님이 신규 설비 투자를 결정하셨는데, 자금은 있었지만 현장 저항이 예상됐거든요. 저는 먼저 A4 용지 한 장에 “이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을 모두 적으라고 했습니다.
- 생산부장 (설비 운영 책임)
- 품질관리팀장 (신규 설비 품질 검증)
- 재무담당 (자금 흐름 관리)
- 현장 조반장 3명 (실제 기계 다루는 사람들)
- 노무사 (인력 재배치 관련 법률 검토)
이렇게 정리하니 8명이 나왔습니다. 사장님은 처음에 “생산부장이랑 재무담당만 알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셨어요. 제가 “조반장들 빼면 3개월 뒤에 후회하십니다”라고 말씀드렸죠.
2단계: 1:1 사전 브리핑
전체 회의 전에, 저는 8명 각각과 15분씩 개별 면담을 했습니다. 핵심은 “당신의 의견을 먼저 듣고 싶다”는 태도였어요. 조반장 한 분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20년 다니면서 사장님이 제 의견 물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설비 바꾸는 거, 솔직히 불안했는데… 이렇게 설명 들으니까 납득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품질관리팀장이 중요한 제안을 했습니다. “신규 설비 도입 전에 2주간 파일럿 테스트를 하면 초기 불량률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거였어요. 사장님은 처음 듣는 얘기였습니다. 사전 소통이 없었다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아이디어였죠.
3단계: 전체 공유와 수정된 계획 발표
개별 면담 결과를 반영해서 원래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전체 회의에서 “여러분 의견을 반영해 이렇게 바꿨다”고 발표했어요. 현장 반응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반대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거든요.
결과요? 신규 설비 도입 후 3개월 만에 생산성이 31% 올랐습니다. 초기 불량률은 예상의 절반 수준인 2.3%에 그쳤고요. 계획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바뀐 건 ‘과정’이었어요.
30년간 반복해서 본 패턴 — 소통 부재의 진짜 원인
김동연 지사의 ‘소통 부재’를 지적하는 기사들을 보면서, 저는 30년간 수백 번 목격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소통이 안 되는 데는 패턴이 있거든요.
패턴 1: “내용이 좋으면 설득은 필요 없다”는 착각
제가 만난 대표님들 중 상당수가 이 함정에 빠집니다. 특히 전문 경영인 출신, 대기업에서 임원 하다가 내려오신 분들이 그렇습니다. “이게 왜 좋은지 숫자로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시죠. 김동연 지사도 비슷한 케이스로 보입니다. 경제부총리 출신이시잖아요. 정책의 논리적 완성도에 자신이 있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은 논리로 설득되지 않습니다. 존중받는다는 느낌으로 움직입니다. 의회 의원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들도 지역구 민심을 대변하는 사람들이거든요. “당신 의견이 중요하다”는 신호를 먼저 보내야 협력이 시작됩니다.
패턴 2: 시간이 없다는 핑계
“지금 급하니까 일단 밀어붙이고 나중에 설명하자.” 이 말, 제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하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립니다. 이번 경기도 추경이 딱 그 사례죠. 사전 협의에 2주만 더 썼으면, 한 달을 아꼈을 겁니다.
패턴 3: 업종별 차이
재미있는 건, 업종에 따라 소통 문화가 확연히 다르다는 겁니다. 제 경험상, 제조업은 그나마 현장 소통이 됩니다. 기계가 멈추면 바로 티가 나니까요. 반면 IT 기업이나 서비스업은 “일단 론칭하고 보자” 문화가 강합니다. 공공 부문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본 조직 중 소통이 가장 어려운 곳입니다. 계층이 많고, 각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거든요.
경기도는 인구 1,400만의 메가 광역자치단체입니다. 여기서 41조 원을 움직이려면 상상 이상의 이해관계 조율이 필요합니다. 김동연 지사가 결국 여야 협치위원회를 열어 합의문에 서명한 건, 뒤늦게나마 그 필요성을 인정한 거라고 봅니다.
지금 당장 점검하셔야 합니다
저는 강연장에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선생님, 저는 소통 잘하는 편인데요?” 그러면 저는 되묻습니다. “지난 한 달간 중요한 결정을 내리실 때, 사전에 의견을 구한 사람이 몇 명이셨습니까?”
대부분 대답을 못 하십니다. 혹은 “재무팀장이랑 상의했다” 정도로 끝나죠. 그건 소통이 아닙니다. 그건 보고입니다.
경기도 41조 추경이 지각 통과한 건,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 회사에서도 지금 이 순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좋은 전략이 현장에서 막히고, 핵심 인력이 “나는 왜 몰랐지?”라며 이탈을 고민하고, 실행은 계속 미뤄지고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퇴근 전에 딱 한 가지만 해보십시오. 지금 진행 중인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를 떠올리시고, 그 프로젝트에 영향을 받지만 아직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한 사람이 누구인지 적어보세요. 그리고 내일 아침, 그 사람에게 15분만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41조 원을 움직이는 지사도 의회와 소통하지 않으면 한 달을 날립니다. 당신의 다음 프로젝트는 얼마나 늦어질 예정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