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그날, 회의실 공기가 얼어붙었습니다

2019년 11월 어느 수요일 오후, 경기도 안양에 있는 직원 34명 규모의 제조업체 회의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회사의 경영 정상화 프로젝트를 맡은 지 2주째였고, 그날은 월간 실적 점검 회의가 열리는 날이었거든요. 회의실에는 각 팀장급 7명과 대표이사가 앉아 있었습니다.

영업팀장 박 과장이 3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목표 대비 78% 달성. 나쁘지 않은 숫자였어요. 전년 동기 대비로는 오히려 12% 상승한 수치였거든요. 그런데 발표가 끝나자마자, 사장이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 과장, 그래서 내가 뭘 믿고 월급을 주는 건지 모르겠네. 이럴 거면 차라리 외주 주는 게 낫지 않아?”

회의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습니다. 박 과장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창백해지더군요. 다른 팀장들은 고개를 숙이고 노트북 화면만 들여다봤습니다. 저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속으로 생각했어요. ‘아, 이 회사 문제의 본질이 여기 있었구나.’

회의는 20분 만에 끝났습니다. 아무도 추가 발언을 하지 않았거든요. 회의실을 나서는 직원들의 표정에서 저는 분노도, 슬픔도 아닌 무언가를 봤습니다. 체념이었습니다.

2부: 사장들이 모르는 것, 혹은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도 30년 전,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비슷한 실수를 했습니다. 직원이 실수하면 곧바로 쏘아붙였고, 성과가 안 나오면 “내가 왜 당신 월급을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실제로 했었거든요. 그때는 그게 솔직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장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팩트를 말하는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어요.

그런데 결과가 어땠을까요. 6개월 만에 핵심 인력 3명이 동시에 퇴사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경쟁사로 가서 제가 2년간 공들인 거래처를 통째로 가져갔더군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사장의 말 한마디가 조직에 미치는 파괴력을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장님들이 오해하는 게 있어요. “나는 화가 나서 한 말이 아니라 팩트를 말한 것뿐이다”라는 거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성과가 목표에 못 미쳤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 ‘팩트’가 전달되는 방식이거든요.

박 과장 입장에서 생각해보세요. 그는 3분기 내내 주말도 반납하고 뛰었습니다. 전년 대비 12% 성장이라는 숫자가 저절로 나온 게 아니에요. 새벽에 거래처 전화 받고, 품질 클레임 직접 처리하고, 신규 고객 10곳을 개척했거든요. 그런데 돌아온 말이 “외주 주는 게 낫지 않아?”였습니다.

그 순간 박 과장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내가 왜 이 회사에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스쳤을 겁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한번 시작되면 멈추지 않아요. 퇴근길에, 주말 아침에, 월요일 출근 버스 안에서 계속 떠오르거든요.

제가 30년간 컨설팅하면서 본 패턴이 있습니다. 핵심 인력의 퇴사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사장의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고, 몇 주, 몇 달에 걸쳐 자라다가 어느 순간 “저 다른 데서 연락 왔는데요”라는 말로 터져 나옵니다.

3부: 그 회사에서 제가 실제로 한 것들

회의가 끝난 그날 저녁, 저는 대표이사와 단둘이 만났습니다. 사무실이 아니라 근처 커피숍에서요. 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어요.

“사장님, 오늘 회의에서 하신 말씀 때문에 박 과장 6개월 안에 나갑니다. 그리고 박 과장 나가면 영업팀 절반이 따라 나갈 겁니다.”

대표는 처음에 발끈했어요. “내가 뭘 잘못했다는 겁니까? 사실대로 말한 건데요.” 저는 30분 동안 설명했습니다. 왜 그 말이 문제인지, 직원들이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회사에 어떤 비용으로 돌아오는지를 말이죠.

다음 날부터 저는 세 가지를 실행했습니다.

첫째, 사장의 ‘금지어 리스트’ 만들기

대표와 함께 앉아서 절대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말들을 정리했습니다. A4 한 장짜리였어요.

  • “그래서 내가 뭘 믿고 월급을 주는 거야?”
  • “이럴 거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지”
  • “요즘 취업 힘든 거 알지?”
  • “나 때는 이 정도 성과 내려면 밤새웠어”
  • “다른 사람한테 시킬까?”

이 리스트를 대표 책상 유리판 아래에 넣어뒀습니다. 회의 전에 한번씩 보라고요.

둘째, 피드백 구조 바꾸기

비판을 해야 할 때는 반드시 1:1로, 그리고 반드시 구체적인 대안과 함께 하도록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회의석상에서 공개적으로 망신 주는 건 금지했어요. 대신 주간 1:1 미팅을 도입했습니다. 대표가 각 팀장과 15분씩 개별 면담을 하는 거죠.

셋째, 박 과장에게 직접 사과하기

이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사장이 직원에게 사과하는 건 자존심 문제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하지만 저는 대표를 설득했습니다. “지금 사과 안 하면 6개월 뒤에 퇴직금 정산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후임자 뽑아서 교육시키는 데 최소 1년 걸립니다. 뭐가 더 비싼 거 같으세요?”

대표는 다음 주 월요일, 박 과장을 따로 불러서 점심을 샀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군요. “지난주 회의에서 내가 말을 잘못했어. 박 과장이 고생하는 거 모르는 게 아닌데, 숫자만 보고 그만 흥분했어. 미안하네.”

결과요? 박 과장은 안 나갔습니다. 오히려 다음 분기에 목표 대비 112%를 달성했어요. 나중에 제가 따로 만나서 물어봤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사장님이 사과하신 게 처음이었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아, 이 회사가 변하려고 하는구나.”

3개월 뒤 그 회사 매출은 전분기 대비 23% 상승했습니다. 구조조정을 한 것도 아니고, 신제품을 출시한 것도 아니에요. 사장의 말투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4부: 30년간 반복해서 본 패턴들

제가 수백 개의 회사를 보면서 발견한 게 있어요. 사장의 파괴적인 언어 습관은 업종과 무관하게 비슷한 패턴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 패턴은 대부분 사장 본인의 어린 시절이나 초기 직장 경험에서 시작되더라고요.

제조업 사장들은 주로 “내가 현장에서 이만큼 했는데 너희는 뭐 하는 거야” 유형이 많습니다. 본인이 용접공 출신이거나 기계를 직접 돌려본 경험이 있으면 특히 그래요. 몸으로 때운 세대의 자부심이 언어 폭력으로 변질되는 거죠.

IT 업계 사장들은 좀 다릅니다. “이 정도 로직도 못 짜?” 식의 지적 우월감 표현이 많아요. 개발자 출신 대표들이 특히 그렇더군요. 본인이 코딩을 잘했으니까 직원들의 코드를 보면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유통업은 또 달라요. “매출이 답이야, 매출!”을 외치면서 실적 압박을 인격 공격과 섞어버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 정도 매출 가지고 와서 뭔 낯짝으로 회의실에 앉아 있어?”라는 말을 실제로 들은 적 있어요.

흥미로운 건 가족 기업에서 이 문제가 더 심하다는 겁니다. 부자(父子) 관계가 사장-직원 관계와 섞이면 언어 폭력의 강도가 훨씬 세지더라고요. 아버지 사장이 아들 전무에게 “이런 것도 못 하면서 내 뒤를 이어?” 같은 말을 회의석상에서 하는 걸 여러 번 봤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직원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우리도 저런 식으로 평가받겠구나’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근본 원인은 결국 하나로 수렴됩니다. 사장들이 ‘권위’와 ‘권력’을 혼동한다는 것이에요. 권력은 직위에서 나옵니다. 해고할 수 있고, 월급을 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권위는 다릅니다. 권위는 존경에서 나와요. 그리고 존경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오직 행동으로만 얻을 수 있는 거거든요.

5부: 사장님, 오늘 하루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사장님이시라면,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오늘 회사에서 직원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혹시 회의 중에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으셨나요? “이 정도밖에 안 돼?” 같은 말이 무심코 나오지 않았나요? 직원이 보고하러 왔을 때 한숨부터 쉬지 않으셨나요?

저는 30년간 망해가는 회사를 살리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게 있어요. 회사를 살리는 건 전략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붙잡아두는 건 연봉이 아니라 존중이에요.

오늘 퇴근하시기 전에 한 가지만 해보세요. 오늘 하루 동안 직원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려보시는 겁니다. 그 말을 당신의 자녀가, 혹은 당신의 부모님이 들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만약 떠올리기 불편한 말이 하나라도 있다면, 내일 그 직원에게 가서 한마디 하세요. “어제 내가 말을 좀 거칠게 했네. 미안해.”

그 한마디가 어렵다고요?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그 한마디 아끼시다가 핵심 인력 잃고, 후임자 구하느라 6개월 허비하고, 거래처 빼앗기는 것과 비교하면, 뭐가 더 어려운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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