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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은 오르는데 돈이 없는 이유: 현금흐름의 함정
2019년 겨울, 인천 남동공단의 한 금속 가공 업체. 사장님이 제 앞에 서류 뭉치를 탁 던지듯 올려놓으셨습니다. 손이 떨리고 있었어요. “컨설턴트님, 저 올해 매출 80억 찍었습니다. 근데 지금 직원 월급을 못 줄 것 같아요.”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돕니다.
80억. 전년 대비 35% 성장한 숫자였습니다. 보통 사람 눈엔 ‘잘나가는 회사’였죠. 근데 통장 잔액은 230만 원이었습니다. 직원 23명 월급날이 사흘 뒤였고요.
매출과 현금은 완전히 다른 짐승입니다
30년 동안 수백 개 기업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제가 가장 많이 목격한 장면이 바로 이겁니다. 사장님들이 매출표 보면서 웃고, 통장 보면서 우는 장면. 이게 농담이 아니에요. 진짜 한국 중소기업 현장의 민낯입니다.
많은 사장님들이 매출을 ‘돈’이라고 착각합니다. 아니에요. 매출은 그냥 숫자입니다. 장부에 찍힌 약속이에요. 그 약속이 실제 내 통장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시간, 그 ‘간격’이 기업을 죽이는 겁니다.
저는 이걸 ‘현금흐름의 함정’이라고 부릅니다. 잘 팔릴수록, 성장할수록, 오히려 더 빠르게 이 함정으로 걸어 들어가는 구조. 아이러니하죠. 근데 이게 현실입니다.
내가 직접 틀렸던 날의 이야기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도 초창기엔 틀렸습니다. 컨설턴트 경력 5년 차 때였나, 경기도 안산의 한 플라스틱 사출 업체를 맡았었어요. 당시 그 사장님이 얼마나 의욕이 넘쳤냐면, 대형 거래처 두 곳을 한꺼번에 따냈거든요.
저는 그때 “대박 났네요, 이제 투자 확대하시죠”라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요. 그 거래처 두 곳, 납품 조건이 각각 90일짜리 어음이었거든요. 납품은 즉시, 돈은 석 달 뒤에. 근데 원자재는 선불이고, 직원 월급은 매달 나가야 하고.
6개월 만에 그 회사 부도났습니다. 매출이 오르면서요. 제가 그 현장에서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진짜로. 사장님 앞에서 “제가 잘못 봤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날의 그 무게가 저를 지금의 저로 만든 것 같습니다.
왜 매출이 오를수록 돈이 더 없어지는가
이게 핵심인데요. 구조를 한번 뜯어봐야 합니다. 매출이 오른다는 건 뭘 의미하냐면, 더 많이 팔겠다는 거잖아요. 더 많이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면, 더 많이 만들어야 하죠. 더 많이 만들려면 원자재를 더 사야 하고, 인력을 더 쓰거나 야근을 시켜야 합니다. 이 비용들은 지금 당장 나갑니다.
근데 납품 대금은요? 대기업 거래처라면 60일, 90일, 심한 경우 120일 어음이에요. 중견기업도 30~60일은 기본이고요. 나는 지금 돈을 쏟아붓고, 받는 건 석 달 뒤. 이걸 전문용어로 ‘운전자본 부족’이라고 합니다. 근데 저는 그냥 ‘시간차 지옥’이라고 부릅니다.
매출이 두 배 되면 이 시간차 지옥의 규모도 두 배가 됩니다. 세 배 성장하면 세 배로 커지죠. 성장의 속도가 빠를수록 이 구멍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구조에요. 그러니까 잘 팔릴수록 더 위험해지는 역설이 생기는 겁니다.
현장에서 직접 본 세 가지 패턴
첫 번째: 외상 매출의 늪
2015년에 제가 맡았던 대전의 IT 솔루션 회사. 연 매출 30억짜리 회사였는데, 외상 매출채권이 12억이었습니다. 매출의 40%가 아직 못 받은 돈이었던 거예요. 그 회사 사장님, 매달 법인카드 한도 올려달라고 은행에 사정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뭔지 아세요? 거래처별로 수금 현황표를 뽑았습니다. 그랬더니 가장 큰 거래처 두 곳이 평균 150일 만에 결제하고 있었어요. 심지어 한 곳은 6개월 넘은 미수금이 2억 3천만 원이나 있었습니다. 근데 그 사장님은 그걸 몰랐어요. 그냥 “거래처가 크니까 괜찮겠지”였던 거죠.
두 번째: 재고의 무덤
제조업 하시는 분들한테는 재고가 곧 현금입니다. 창고에 쌓인 재고는 아직 팔리지 않은, 잠자는 돈이에요. 2021년에 제가 봤던 경북 구미의 전자부품 업체, 창고에 재고가 14억어치 쌓여 있었습니다. 그 회사 총자산의 30%였어요.
왜 그렇게 됐냐고요? “혹시 주문 들어올 때 못 맞추면 어떡하냐”는 불안 때문에 원자재를 과하게 사뒀던 겁니다. 불안이 현금을 창고에 가뒀어요. 재고가 자산이라고요? 아닙니다. 팔리기 전까지 재고는 그냥 비용입니다.
세 번째: 성장의 덫에 걸린 투자
매출이 오르면 사장님들이 흥분합니다. 당연하죠. 그 흥분이 설비 투자, 사무실 확장, 인력 채용으로 이어지는데, 문제는 그 투자 타이밍이에요. 수금이 완료되기 전, 즉 아직 통장에 안 들어온 매출을 담보로 투자를 감행하는 겁니다.
인천 사장님 기억하시죠, 이 칼럼 시작할 때 얘기했던. 그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매출 80억 찍겠다는 예감에 설비를 미리 들여놨어요. 설비 대금은 현금으로 나가고, 매출 대금은 어음으로 받고.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공식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냐고요
자, 이제 진짜 얘기 합시다. 저는 강연장에서도 항상 이 얘기 할 때 청중 다 일으켜 세우거든요. 그만큼 이게 살고 죽는 문제라서요.
첫째, 매출이 아니라 수금일을 관리하세요
지금 당장 거래처별로 표 하나 만드세요. 납품일, 청구일, 약정 수금일, 실제 수금일. 이 네 가지 컬럼만 있으면 됩니다. 어렵지 않아요. 엑셀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게 없으면 여러분은 눈 감고 운전하는 겁니다.
그리고 수금일이 늦어지는 거래처에 대해선 반드시 선결제 할인이나 조기 수금 인센티브를 협의하세요. 거래처가 크다고, 을의 위치라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면 나중에 그 거래처한테 경영이 다 잠식당합니다. 제가 수십 번 목격했습니다.
둘째, 손익계산서 말고 현금흐름표를 매주 보세요
우리나라 중소기업 사장님들 90%가 손익계산서만 봅니다. 손익계산서, 솔직히 저는 그걸 ‘희망 보고서’라고 부릅니다. 아직 안 들어온 돈까지 수익으로 잡히니까요. 진짜는 현금흐름표입니다. 이번 달에 실제로 들어온 돈, 나간 돈.
회계 담당자한테 매주 월요일 아침에 현금흐름 요약표 받으세요. 딱 세 줄이면 됩니다. 이번 주 들어올 돈, 나갈 돈, 그 차이. 이 습관 하나가 부도 막습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에요.
셋째, 성장 속도를 현금이 따라갈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하세요
새 거래처, 새 주문, 신규 사업. 다 좋습니다. 근데 그 성장을 감당할 현금 여력이 지금 있냐는 걸 먼저 물어야 합니다. 간단한 공식 알려드릴게요. 새 주문을 수행하기 위해 선지출되는 비용 총액, 이게 수금일 전까지 버틸 수 있는 내 현금 여력보다 크면, 그 주문 받으면 안 됩니다.
“주문을 거절하라고요?” 맞습니다. 감당 못 할 주문은 독약입니다. 잘 팔면 잘 팔수록 더 빨리 죽는 구조, 이걸 막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인천 사장님한테 제가 가장 먼저 한 말이 그거였습니다. “사장님, 지금 당장 이 거래처 납품량 30% 줄이세요.” 그분, 처음에 저 욕했어요. 나중에 술 한잔 사셨지만요.
30년 현장이 저한테 가르쳐준 단 하나의 진실
기업은 적자로 안 죽습니다. 현금이 말라서 죽습니다. 이게 제가 30년 동안 현장에서 배운, 그리고 죽었다 깨어나도 잊을 수 없는 진실입니다. 흑자 부도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손익은 플러스인데 현금이 없어서 망하는 거요. 실제로 있습니다. 저 수십 건 봤어요.
매출 숫자에 취하지 마세요. 그 숫자가 통장에 찍히는 날 기준으로 경영하세요. 매출은 목표가 되어선 안 됩니다. 수금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팔았냐가 아니라, 받았냐가 진짜입니다.
오늘 이 글 읽고 나서, 딱 한 가지만 해주세요. 지금 여러분 회사의 미수금 총액이 얼마인지 확인해보세요. 그 숫자 보고 나서도 “우리 회사 현금 괜찮다”고 하실 수 있는지, 제가 정말로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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