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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빌딩 워크샵이 실패하는 진짜 이유 (돈낭비 방지법)

2019년 늦가을, 충북 청주의 한 중견 제조업체 회의실이었습니다.
대표이사가 제 앞에 A4 용지 한 장을 밀었습니다. 견적서였어요.

“선생님, 저 지난달에 팀 빌딩 워크샵 했습니다. 강원도 리조트 2박 3일. 직원 70명 데리고. 총 4,200만 원 들었어요.”

저는 말없이 견적서를 들여다봤습니다. 숙박비, 식비, 액티비티, 팀 빌딩 전문 업체 진행 비용, 이동 버스 렌트비. 꼼꼼하게 다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어떻습니까?” 제가 물었습니다.

대표이사가 잠깐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돌아온 다음 날부터 똑같았어요. 아니, 더 나빠진 것 같기도 하고.”

저는 이런 장면을 30년 동안 수십 번 봤습니다.
4,200만 원짜리 워크샵도 있었고, 어떤 회사는 1억이 넘는 돈을 썼어요. 결과는 다 비슷했습니다.


워크샵은 왜 하는 겁니까

저는 컨설팅 현장에서 처음 만나는 대표들한테 꼭 이걸 물어봅니다.
“팀 빌딩 워크샵, 왜 하려고 하세요?”

돌아오는 답이 거의 정해져 있어요.
“직원들 사기 좀 올리려고요.” “팀워크가 부족한 것 같아서요.” “요즘 분위기가 좀 그래서요.”

이 말들 들을 때마다 저는 속으로 한숨을 쉽니다.
왜냐면 이 대답 안에 이미 실패의 씨앗이 들어있거든요.

‘분위기가 그렇다’는 건 증상이지, 병명이 아닙니다.
병명도 모르면서 약을 쓰면 어떻게 됩니까. 돈만 날리죠.

내가 직접 망쳐본 워크샵 이야기

사실 저도 컨설팅 초반에 실수를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컨설턴트 경력 7년 차쯤 됐을 때였을 겁니다. 서울 영등포의 한 유통회사에서 팀 갈등이 심하다며 저를 불렀어요.
영업팀과 물류팀이 서로 으르렁대고, 회의만 하면 책임 공방이 벌어지는 상황이었죠.

저는 그때 참 자신만만했습니다.
“아, 이거 팀 빌딩이 필요한 케이스네. 제가 프로그램 설계해드릴게요.”

경기도 가평 계곡 근처 펜션 단지를 잡았고, 1박 2일 일정을 제가 직접 기획했습니다.
오전엔 협력 게임, 오후엔 팀별 미션, 저녁엔 솔직한 대화 시간. 교과서대로 짠 완벽한 구성이었어요.

현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어요. 웃음도 나오고, 게임할 때는 영업팀이랑 물류팀이 같은 편이 돼서 소리도 지르고.
저도 ‘이거 되겠다’ 싶었죠.

그런데 2주 후, 그 회사 대표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영업팀장이랑 물류팀장이 어제 또 회의실에서 고성이 오갔어요.”

저는 그날 밤 혼자 앉아서 오래 생각했습니다.
뭘 놓쳤을까. 프로그램이 문제였을까. 진행 방식이었나.

그리고 일주일 뒤에 다시 그 회사를 찾아갔습니다. 이번엔 워크샵 얘기는 안 하고, 그냥 각 팀장들을 한 명씩 따로 만났어요.
30분씩, 그냥 현장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나온 얘기가 충격이었습니다.
영업팀장이 이러더라고요. “물류팀이 납기를 자꾸 어기는 이유가, 사실은 전산 시스템 문제예요. 근데 회사가 그걸 안 고쳐줘요.”

물류팀장은요? “영업팀이 고객한테 약속하는 납기 일정을 저희 팀장한테 한 번도 사전에 협의를 안 해요. 그러니까 맨날 뒤통수를 맞죠.”

갈등의 뿌리는 전산 시스템과 프로세스였습니다.
저는 그걸 모르고 계곡에서 팀워크 게임을 시킨 겁니다. 부끄럽죠?

실패하는 팀 빌딩 워크샵의 공통된 패턴

그 사건 이후로 저는 팀 빌딩 워크샵을 의뢰하는 회사들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개 케이스를 지켜보면서 실패하는 워크샵에는 딱 세 가지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첫 번째: 진단 없이 처방부터 합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진찰도 안 하고 약부터 주면 어떻게 됩니까.
근데 대부분의 팀 빌딩 워크샵이 딱 이렇게 돌아갑니다.

“우리 팀 분위기가 안 좋아요.” → “네, 2박 3일 프로그램 준비해드릴게요.”
이게 전부예요. 왜 분위기가 안 좋은지, 갈등의 실제 원인이 뭔지, 아무도 안 물어봅니다.

갈등이 구조적인 문제에서 온 건지, 특정 인물 간의 감정 문제인지, 아니면 업무 프로세스 문제인지에 따라 해결책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걸 모르고 다 같이 레프팅 타러 가봐야 돌아오면 제자리예요.

두 번째: 일상으로의 연결 고리가 없습니다

2023년에 제가 관찰한 한 IT 스타트업 사례입니다.
이 회사는 제주도에서 3일간 워크샵을 했어요. 자연 속 힐링 테마로, 비용이 6천만 원 가까이 들었습니다.

워크샵 마지막 날 저녁, 팀원들이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이제 하나야.” “너무 좋았다.” “앞으로 잘 해보자.”

그런데 서울 사무실로 돌아오니까 뭐가 기다리고 있습니까.
밀린 업무, 터진 버그, 화난 클라이언트 이메일, 그리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회의 방식.

제주도에서 생긴 감정은 72시간을 못 버팁니다. 제가 장담해도 됩니다.
워크샵에서 생긴 좋은 감정을 일상의 시스템으로 연결해주지 않으면, 그 감정은 그냥 추억 사진 한 장으로 끝납니다.

세 번째: 리더가 빠져 있습니다

이건 제일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팀 빌딩 워크샵을 기획하는 회사 열 곳 중 일곱 곳 정도는 리더, 그러니까 팀장이나 임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를 안 합니다.

“직원들끼리 어울리라고 보내는 거지, 우리가 거기서 뭘 해요?” 이러는 겁니다.
심한 경우엔 대표가 워크샵 첫날 잠깐 얼굴 비추고 서울로 올라가버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직원들이 그걸 어떻게 보는지 아세요?
“아, 이거 우리끼리 알아서 친해지라는 거구나. 위에서는 변할 생각이 없구나.”

팀 빌딩은 위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리더가 먼저 자기 얘기를 꺼내고, 먼저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먼저 변화를 약속해야 팀원들이 따라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30년 동안 제가 직접 설계하고 따라다닌 팀 빌딩 중에 진짜로 변화가 일어난 케이스들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딱 세 가지를 지켰더라고요.

실행 원칙 1. 워크샵 전에 반드시 현장 진단부터 하세요

최소 2주 전에, 참여 인원의 절반 이상과 익명 설문 또는 개별 인터뷰를 합니다.
물어봐야 할 건 딱 하나예요. “우리 팀이 잘 안 되는 진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와야 워크샵 주제가 결정됩니다.
소통 문제가 나오면 소통 워크샵을, 역할 혼선이 나오면 역할 재정립 세션을 넣어야 해요.

진단 없는 워크샵은 병명 모르는 수술입니다.
아무리 비싼 칼을 써도 소용없어요.

실행 원칙 2. 워크샵 결과물은 반드시 월요일 아침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워크샵 마지막 세션에서 반드시 이 작업을 해야 합니다.
“우리 팀이 다음 달부터 딱 한 가지만 바꾼다면 뭘 바꾸겠습니까?” 이걸 팀별로 합의하고 문서로 남기는 겁니다.

여기서 주의할 게 있어요. ‘우리 더 자주 소통하자’ 같은 추상적인 결론은 쓸모없습니다.
“매주 화요일 오전 9시에 15분 스탠딩 미팅을 한다.” 이렇게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4주 뒤에 짧은 회고 미팅을 잡으세요.
워크샵에서 합의한 것들이 실제로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자리가 없으면, 그 합의는 2주를 못 넘깁니다.

실행 원칙 3. 리더가 먼저 열어야 합니다

제가 성공적이었다고 기억하는 워크샵 중에 하나가 있어요.
경기도 안산의 한 200명짜리 제조업체였는데, 그 대표가 워크샵 첫 세션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현장 직원들한테 제 생각을 제대로 전달 못 했어요. 그게 제 잘못입니다. 오늘부터 바꾸겠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어요. 몇몇 직원들 눈이 빨개지더라고요.
그 순간 이후로 워크샵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직원들이 진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어요.

리더가 먼저 취약함을 보여주면 팀원들이 따라옵니다.
리더가 판사처럼 팔짱 끼고 앉아 있으면 직원들은 검사 앞에 선 피고인처럼 방어적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

저는 강연 다닐 때마다 이 말을 합니다.
“팀 빌딩 워크샵은 치료제가 아니라 비타민입니다.”

몸이 건강한 사람한테 비타민을 주면 더 좋아집니다.
근데 암 환자한테 비타민을 줘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팀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프로세스가 엉켜있고, 리더십에 치명적인 구멍이 뚫려 있는데 워크샵 한 번으로 그걸 때우려고 하지 마세요.
그 돈, 그냥 전산 시스템 고치거나 외부 코치 붙이는 데 쓰는 게 백 배 낫습니다.

팀 빌딩 워크샵은 팀이 잘 굴러가고 있을 때 더 잘 굴러가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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