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ml
회의가 많은 회사가 결국 망하는 이유 — 30년 현장에서 건진 진짜 이야기
2019년 여름, 인천 남동공단 한 제조업체. 오전 9시가 되자마자 회의실 불이 켜졌습니다. 팀장급 7명이 들어왔고, 화이트보드엔 지난주 회의 때 적었던 내용이 아직 지워지지도 않은 채였죠. 그 옆에 또 새로운 항목들이 빼곡히 적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날 복도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며, 벽에 붙은 월간 회의 일정표를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한 달에 정기 회의만 스물세 개. 비정기 포함하면 서른 개가 훌쩍 넘었어요. 그러면서 공장 라인은 오전 내내 절반이 돌아가고 있었고요. 그 회사 대표님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희는 소통을 정말 열심히 하거든요. 그런데 왜 자꾸 일이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 회사, 제가 컨설팅 들어간 지 14개월 만에 문을 닫았거든요.
회의가 많다는 건, ‘일이 없다’는 신호입니다
제가 처음 이 바닥에 발을 들였던 1990년대 초반엔 저도 착각했어요. “회의를 자주 하면 조직이 탄탄해지겠지. 소통이 되겠지.” 순진하게 그렇게 믿었죠. 그런데 수십 개 기업을 돌고 나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회의가 많은 조직에서 실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회의는 전체의 20%도 안 된다는 겁니다. 나머지 80%는 뭐냐? ‘보고를 위한 회의’, ‘회의를 위한 회의’,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것 — ‘내가 빠지면 불안하니까 끼어드는 회의’입니다.
제가 직접 하루 업무 시간을 분석해본 적이 있어요. 경기도 수원의 한 IT 서비스 회사였는데, 개발팀장 한 명이 하루 8시간 중 실제 개발 업무에 쓰는 시간이 얼마인지 일주일간 추적했습니다. 결과가 나왔을 때 저도 충격이었어요. 하루 평균 1시간 40분. 나머지 6시간 20분은 회의, 회의 준비, 회의 후 보고서 작성이었습니다.
그 팀장님이 저한테 조용히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맴돌아요. “선생님, 저 요즘 집에 가면 진짜 일을 합니다. 회사에선 회의만 하니까요.”
왜 회의가 늘어나는가 — 이게 진짜 핵심입니다
회의가 많아지는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어요. 경험상 크게 세 가지 뿌리에서 나옵니다.
첫 번째 — 책임이 무서운 조직
혼자 결정했다가 잘못되면 내 목이 날아가는 문화. 이런 조직에선 아무도 혼자 결정 안 합니다. 반드시 회의를 열어서 ‘우리가 다 같이 결정했다’는 면죄부를 만들죠. 책임을 나눠 가지면 아무도 책임을 안 지게 되는 구조입니다.
부산의 한 유통회사에서 이런 경우를 봤어요. 거래처 하나 바꾸는 데 3주간 여섯 번 회의를 했습니다. 왜냐? 2년 전에 담당자가 혼자 거래처 변경 결정했다가 그게 잘못돼서 본인이 자진 퇴사한 일이 있었거든요. 그 ‘트라우마’가 조직 전체에 각인된 겁니다.
두 번째 —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조직
정보가 실시간으로 흐르지 않으면, 사람을 직접 불러 모아야 합니다. 회의가 곧 정보 전달 수단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아시죠? A가 B한테 말하고, B가 C한테 말하는 걸 왜 여덟 명이 한 방에 모여서 들어야 합니까.
서울 강남의 한 광고 에이전시. 저한테 처음 물어봤을 때 직원 45명짜리 회사였는데, 주 2회 전체 회의를 하고 있었어요. 이유가 뭔지 아세요? 팀 간에 서로 뭘 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내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자체가 없다는 이야기예요.
세 번째 — 대표가 회의를 ‘관리’라고 착각하는 조직
이게 가장 고치기 어렵습니다. 대표가 회의를 자주 소집하면서 ‘내가 조직을 잘 이끌고 있다’는 심리적 만족을 얻는 경우예요. 본인은 회의를 통해 리더십을 발휘한다고 느끼는 거죠. 그런데 직원들 입장에선? 하루 종일 보고하느라 정작 일을 못 하는 겁니다.
제가 컨설팅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바로 이 세 번째 케이스입니다. 대표님한테 “회의 줄이세요”라고 하면, 표정이 싹 굳거든요. 왜냐? 그건 곧 “당신이 문제입니다”라는 말과 같으니까요.
제가 직접 틀렸던 이야기도 하겠습니다
제 컨설팅 경력 초기에, 저도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솔직하게 털어놓겠습니다.
2001년, 대구의 한 섬유 제조업체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당시 그 회사는 회의가 너무 없어서 문제였어요. 팀장들이 각자 알아서 움직이다 보니 방향이 제각각이었죠. 저는 그때 “소통을 늘려야 합니다, 정기 회의를 도입하세요”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에 다시 갔더니. 정기 회의가 주 3회가 돼 있었고, 그 회의에서 파생된 소위원회 회의가 또 두 개가 생겨 있었습니다. 제가 씨앗을 뿌린 셈이 됐죠. 그 대표님이 저한테 “선생님 말대로 했더니 회의가 너무 많아졌어요”라고 하는데, 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때 배웠습니다. 회의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회의의 ‘목적’과 ‘권한’이 핵심이라는 걸요. 회의를 늘리거나 줄이는 게 답이 아니에요. 회의 하나하나에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회의가 망하게 하는 진짜 메커니즘
회의가 많으면 회사가 망한다, 이게 단순히 시간 낭비 때문만이 아닙니다. 더 깊은 구조적 파괴가 일어나요.
첫째, 실행 속도가 죽습니다. 시장은 매일 변하는데, 회사는 회의하느라 반응을 못 해요. 경쟁사는 이미 세 발 앞서 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내부에서 “이게 맞나요, 괜찮나요”를 묻고 있는 겁니다.
둘째, 핵심 인재가 떠납니다. 일 잘하는 사람들은 자기 시간의 가치를 압니다. 쓸데없는 회의에 불려 다니기 시작하면, 그들은 조용히 이력서를 씁니다. 남는 사람들은 대부분 회의가 편한 사람들이에요. 그 조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말 안 해도 아시겠죠.
셋째,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것 — 회의가 ‘일했다’는 착각을 만듭니다. 하루 종일 회의하고 나면, 직원들도 대표님도 왠지 열심히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퇴근하면서 “오늘 바빴다”고 느끼죠. 그런데 실제 매출 올리는 행동, 고객 만나는 행동, 제품 개선하는 행동은 하나도 안 된 겁니다.
이게 쌓이면 어떻게 되냐고요? 6개월, 1년 지나면 숫자가 가르쳐 줍니다. 매출은 제자리이거나 줄어 있고, 비용은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다들 “우리 열심히 했는데 왜 이래”라고 합니다. 열심히 한 게 맞아요. 그런데 방향이 없는 열심히는 그냥 제자리 달리기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됩니까 — 30년이 준 세 가지 답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실제로 써먹고 효과 본 방법들만 얘기하겠습니다.
1. 모든 회의에 ‘오너’를 지정하라
회의를 소집하는 사람이 반드시 그 회의의 결과에 대한 책임자가 되어야 합니다. 회의 끝나고 나서 “그래서 누가 뭘 언제까지 하기로 했지?”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 회의는 실패입니다.
제가 권고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회의 시작할 때 딱 세 가지를 화이트보드에 적어요.
- 이 회의의 목적이 뭔가 (정보 공유? 의사결정? 문제 해결?)
- 오늘 이 회의가 끝나면 무엇이 결정되어야 하나
- 그 결정을 실행할 사람과 기한이 누구/언제인가
이 세 가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그 회의는 열지 말아야 합니다. 진짜입니다.
2. 정보 공유형 회의는 문서로 대체하라
“지난주 실적 공유합니다. 1팀은 얼마, 2팀은 얼마…” — 이런 내용은 문서 하나면 됩니다. 슬랙이든, 카카오워크든, 네이버웍스든, 도구는 뭐든 상관없어요. 읽고 확인 버튼 누르면 끝나는 내용을 왜 사람을 불러서 입으로 합니까.
제가 강남 광고 에이전시에서 실제로 이걸 도입했더니, 주 2회 전체 회의가 월 1회로 줄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1회 회의는 진짜 전략 토론이 됐어요. 품질이 올라간 겁니다. 직원들 만족도 조사에서 “업무 집중도가 높아졌다”는 응답이 무려 74%가 나왔습니다.
3. 대표가 먼저 ‘빠질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에요. 대표님들, 모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참석하면 안 되는 회의들이 있어요. 대표가 회의에 들어오는 순간, 그 회의는 ‘보고 자리’로 바뀝니다. 솔직한 토론이 사라지고 눈치 싸움이 시작되죠.
대전에서 제조업 하시던 대표님 한 분이 계셨어요. 처음엔 제 말을 못 믿으셨습니다. “내가 안 가면 허투루 하지 않겠냐”고요. 그래서 실험을 해봤습니다. 두 달간 팀장 회의에 대표님 안 들어가기. 처음엔 어수선했죠. 그런데 한 달 반이 지나자, 팀장들끼리 회의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표님한테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하고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대표님이 저한테 전화해서 이러셨습니다. “선생님, 우리 팀장들이 이렇게 잘하는 애들인지 몰랐습니다.”